"담담합니다"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안요일씨의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다.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즉석에서 '8.15 평화행동단'에 자원했던 안씨는, 파란색 색소를 잔뜩 뒤집어쓰고 여경들에 빙 둘러싸인 채로 소공로 한가운데 연좌 중이었다.


도로는 모두 경찰이 점령한 상황. 시민을 하도 잡아대느라 닭장차가 모자라지 않았다면, 안씨와 동료 십여명도 15분 전에 연행됐을 거였다. '한 짐'을 비워 낸 호송차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는 무전이 내 귀에도 안씨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아마도 그 목소리를 기사로 쓸 일도 없을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곧 연행되실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담담합니다." 그는 그렇게 거짓말로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광주항쟁때, 그때 제가 광주에 있었습니다. 이건 그때 광주에 버금가는 탄압이에요." 다시 거짓말이다. 8월15일이 골때리긴 했지만 군대도 실탄도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을 40대 남성이 사복체포조와 색소물대포가 난무하는 거리를 보며 느낀 충격은, 막 박정희 시대를 지나온 1980년의 고등학생이 계엄군을 보며 받은 충격 이상일지도 모른다.


안씨는 데모꾼도 좌빨도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8.15 평화행동단'을 모집한단 소리에 즉석에서 자원한 시민이다.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평화적인 연좌농성을 벌이겠다고 모인 이들인데, 한무리의 사복경찰이 이들을 달랑 들고 가는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성추행 시비를 차단하겠답시고 여자 시위자들은 우선 남겨놓았는데, 꽁지머리를 한 안씨는 아마 여성 시위대로 오해를 받았지 싶다.


"이민 신청을 해 놓았어요. 나는 이민가면 사실 그만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이 대책없는 양반아, 떠날수 있으면 얼른 떠나실 것이지 이 무슨.


몇월쯤 이민가실 생각이신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 단지 기사로 썼을 때 팩트가 비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 그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경찰 두 명이 안씨의 팔을 잡아끌었다. "집시법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기자 들으라고 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사복경찰들이 외쳤다. 호송차가 온 모양이다.


따라가며 재차 물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몇달 후면 자신이 살지도 않을 나라 걱정을 하다 연행되는 사람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으로는, 좀 너무한다 싶었다. 8시45분. 경찰의 '진압작전' 개시 45분 후, 인터뷰 시작 3분 후였다.

http://cg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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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EBS <지식채널e>의 김진혁 PD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영국의 광우병 파동을 다룬 ‘17년 후’를 방영한 교육방송(EBS) <지식채널e>의 김진혁 PD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17년 후’ 방영당시 EBS 경영진이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 결방시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교육방송은 지난 1일 정기인사에서 지난 3년 동안 ‘지식채널e’를 연출했던 김 PD를 어린이·청소년팀으로 발령냈다.


이번 인사에 대해 김 PD는 "인사가 난 뒤 바로 부당 인사로 보고 회사 쪽에 이의 제기를 했다"라고 언론에 밝혔다. 교육방송 노조도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했던 담당 피디를 교체한 인사는 보복성 인사이며 경영진의 전형적인 정권 눈치보기다. 김 PD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회사가 노조에 약속했으나 이를 위반했다”라고 비난했다. .........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m4OfubQBr5c$


안타까웠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를 다뤘던 MBC <PD수첩>과 마찬가지로 김진혁 PD도 ‘괴씸죄’에 걸려 고초를 겪고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그 고초가 너무 커 보였다.


<지식채널e>는 <PD수첩>과 마찬가지로 ‘시사저널 파업’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시사저널 파업’을 다룬 ‘기자’편은 파업으로 지친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를 본 적도, 술을 같이 한 적도 없었지만, 무척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와 함께 했다.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NkOXvAq2ElQ$




1년이 지나고, 잊을만할 무렵, 다시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무엇을 해야할 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오늘 <지식채널e>를 보게 되었다.
‘역시 김진혁이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의 제목은 ‘괴벨스의 입’이었다.


그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를 다루는 것으로
자신에게 압력을 가한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 총괄자를 고발했다.
(사람들은 ‘괴벨스의 입’편을 보면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떠올릴 것이다)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SoAM741_kHo$



라디오와 TV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기술을 선보였던 괴벨스,
그의 모습과 방송과 인터넷을 장악하려는 최시중 위원장의 모습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괴벨스가 유태인에 대한 ‘한없는 증오’를 활용했듯,
최 위원장도 좌파에 대한 혐오를 활용할 것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이 오만을 우리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YTN에 낙하산 사장을 앉히는 모습에서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KBS에서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 모습에서...


‘괴벨스의 입’은
히틀러의 자살 이후
괴벨스가 가족과 함께 자살했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제발 ‘괴벨스의 입’을 보고 그들이 벌이고자 하는 일들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http://poisontong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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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민들을 제일 열받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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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히트친 말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한 둘씩 터지던 안타들이 촛불정국에 들어서면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시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그 말들. 기억나세요?  시청역 4번 출구 앞 한 승합차에는 '나를 제일 열받게 하는 이명박 정부의 말말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열받게 만들었던 말에 시민들이 녹색 스티커를 붙입니다.

"시민들이 값싸고 질좋은 고기를 먹게된 것","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는 대통령의 명언부터 "한미간 쇠고기 협상은 100점만점에 90점이상 된다"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 "촛불집회에는 실직한 젊은이들이 참가한다"는 대통령 형님의 말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중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베스트'로 꼽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국민의 의견을 알지 못했으며 뼈저리게 반성한다. 국민의견을 수렴하겠다."(이명박 대통령)

<시사IN> 이재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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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과보다는 차라리 이 사과가 진정 사과다

<시사IN>의 '까칠거칠'에 글을 싣는 칼럼니스트 김현진씨는 '촛불집회 죽순이'다.
촛불이 거리로 나선 5월24일 이후로는 "두어번 빼고" 매일같이 현장을 찾는단다.
지난 금요일에도 삼청동에서 '별동대 놀이'를 했다는 그의 얘기를 <시사IN>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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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띠리릭 하고 문자가 도착했다. 시위 좀 나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예쁜 핑크색 깃발, 이른바 ‘배운 뇨자’들의 모임이 다음까페 ‘소울드레서’ 회원인 친구 B양이 보낸 문자였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시가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왕년에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는 대통령의 담화문을 듣고 그녀는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사과한다면서 그게 무슨 사과야? 그딴 게 사과냐! 그녀는 외쳤다. 그리하여 화창한 토요일 오후, B양은 대통령에게 진짜 사과가 무엇인지 보여 주기 위해 청와대로 진격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문자의 수신자인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이 날 B양의 보좌관 역할이었다. 나 역시 5월 31일 총리공관 앞에서 양초를 든 채 버티고 있다가 ‘이곳은 군사작전 특별지역으로 필요할 경우 발포할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친구를 홀로 적진에 보낼 순 없었다. 적진? 내가 방금 적진이라고 했던가? 오 맙소사, 어째서 성동구에 살고 있으며 군대도 안 갔다 온 여성인 내가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종로구의 어떤 지역을 적진에 들어갈 각오까지 하고 가야 한단 말인가. 어쨌거나 그리하여 우리는 돌진했다, 세종로 1번지로. B양의 가방에는 신선한 사과가 들어 있었다.

6월 21일, 여름이 한창이라 낮이 길었지만 벌써부터 종로 일대는 한 차선을 통째로 틀어막고 있었다. 차들의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는 한층 신경질적이었다. 효자동은 일찍부터 깻잎 한 장도 못 지나갈 예술 주차 작업에 한창이었다. 역시 방비는 철통같아서 맥없이 청와대 입구에서 내쫓긴 다음, 삼청동을 공략하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총리공관 옆, 청와대로 통하는 길로 올라가자 벌써 한 무리의 전의경을 이끄는 사복 경찰이 길을 막아섰다. 어디 가십니까? 그러나 우리도 이 장사 하루 이틀 하는 아가씨들이 아니다. 저 위에 슈퍼 가는데요. 아 슈퍼 가신다고요. 슈퍼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아홉 살이나 먹어 능구렁이가 다 되었다는 하얀 개를 쓰다듬으면서 동네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할머니, 저 위가 어디예요? 어디긴 어디야 청와대지, 지금은 못 가.

오케이, 제대로 왔다. B양은 구멍가게에서 연양갱을 사서 당분을 보충했고, 나는 빵빵하게 충전해 온 핸드폰의 동영상 촬영 모드를 켰다. B양은 비닐에 담아온 사과를 꺼내 매직펜으로 쓰기 시작했다. 문구는 간단했다. <MB OUT>. 좀전까지만 해도 세상 어디의 청과물 가게에서도 볼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보통 사과였던 그것은, 그렇게 우리에게로 와서 특별한 사과가 되었다. 물론 그 사과를 범상한 사과로 여기지 않은 것은 곧 우리를 가로막은 사복 경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못 가십니다. ” B양은 말했다. 대통령에게 꼭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무전기를 든 경찰은 움찔했서 물었다. 뭘 보여 드리려고 그러시냐고. B양은 사과를 내밀었다.

담화문 잘 들었다. 그게 무슨 사과냐. 차라리 이게 사과다. 진짜 사과 보여드리려고 왔다. 앞으로 사과하실 때 좀 참고하셔야겠다. 놀란 그는 사과를 빼앗으려고 이리저리 손을 내밀었고, B양은 이리 저리 피했다. 그거 이리 주세요, 뭐하는 짓입니까. 우리의 B양, 지지 않는다. 왜 선량한 국민을 탄압합니까. 왜 뺏으려고 하시죠? 이건 그냥 사과인데요. 사과 좀 가지고 온 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어차피 껍질은 깎아서 드시면 똑같은데요. 그냥 사과라니까요. 물론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야 할 경찰은 여지없이 화를 낸다. 여보세요, 그게 그냥 사과가 아니잖아요! 한 발 물러나 기록자의 역할에 충실하던 나는 제안한다. 정 그렇다면 여기 소화전 위에라도 올려놓으면 어떨까요. 그분이 오다가다 보실 수 있게.

그러나 그는 그것 역시 거절한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가세요 빨리!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그를 계속 괴롭힌다. 사과 하나 갖고 뭘 그러세요. 사과 좀 보여드리려고 한 것 뿐인데. 그의 목소리는 한층 커졌다. 아니, 그게 그냥 사과가 아니잖아요! 정말 왜 이러십니까! 그냥 사과가 아닌데 이게! 우리는 당황한다. 그러면, 그냥 사과는 뭐고 다른 사과는 뭡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우리를 몰아낸다. 자 가세요, 가세요 나가세요! 어차피 우리가 뵙고 싶었던 ‘그분’에게 사과를 보여 드리기는 틀렸으므로 우리는 퇴각한다. 우리가 완전히 나가는 것을 확인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기세로 경찰은 등을 손으로 떠밀며 밀어내지만, B양은 사과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끝끝내 외친다. 그게 뭐가 사과냐, 이게 차라리 사과다! 사과를 모욕 마라! 나도 사과야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하며 맞장구를 치고 우리는 더 열렬하게 쫓겨난다. 그래도, 그게 무슨 사과냐, 이게 사과지.

어제, 대통령은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불법 시위를 엄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숨이 나온다. 역시 그거, 사과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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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김은숙 작가에 대한 기억
자정에는 만날 수 있어도, 정오에는 만날 수 없는 여자

 

드라마 <온에어>를 처음 보고 속으로 외쳤다. ‘나 저런 작가 알아. 김은숙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딱 그 작가야.’ 다음날 인터넷으로 검색해 작가를 확인해 보았다. 김은숙 작가가 맞았다. 아주 상투적인 표현으로 묘사하자면 <온에어>는 ‘김은숙의, 김은숙에 의한, 김은숙을 위한 드라마’였다. 작가가 주연이었고 출연 배우들은 조연이었다.

 

김은숙 작가가 인터뷰를 위해 일산까지 찾아가서 점심시간부터 두 시간이나 기다린 나를 외면한 후, 연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아마 <온에어>가 실패했다면 김 작가는 상당히 힘들어졌을 것이다. 방송사 안팎에 그녀가 망가져주기를 기대하는 작가와 PD와 배우와 기자가 수천명은 있었을테니까. 물론 이것은 그녀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 세계 생리가 그러하다. 이 수천명의 사람들은 역시 김수현의 몰락을 확인하기 위해 김수현 드라마를 본다.

 

<파리의 연인>에서 <프라하의 연인>을 거쳐 <연인>으로 가는 동안 김은숙 드라마는 확실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시청률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동어반복이 되면서 드라마가 밋밋해지고 있었다. 나는 세 번째 연인이 배경 도시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서 하향세를 읽을 수 있었다. 파리 찍고 프라하 찍었으면 뉴욕 정도는 가 줬어야 했는데, 적당한 협찬사가 붙지 않았는지 그냥 ‘맨’ 연인이었다.

 

<파리의 연인>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소설가(이자 기자) 친구와 드라마 기사를 주로 쓰는 여기자 후배 등과 함께(다른 멤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두 명 더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일산으로 김 작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자정이 넘는 시간에 만났는데,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자정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김 작가를 정오에 가면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였다).

 

‘자정에서 새벽까지’ 김 작가는 드라마를 둘러싼 갖가지 뒷담화를 들려주었다. 그 중 많은 이야기를 <온에어>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때 김 작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난을 했던 배우는 박신양이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만난 자리였는데, 김 작가는 박신양의 전횡을 낱낱이 고했다. 무척 재미있었다. 작가와 배우가 그토록 서로를 증오하면서 만든 작품의 결과가 대박이라니.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복수였다. 당시 박신양의 넥타이가 화제였는데, 그녀는 넥타이를 멘 그를 괴롭히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라는 지문을 자주 넣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복수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박신양이 촬영을 거부해 장면이 아예 바뀌기 일쑤였다는 것이었다(<온에어>에 카메오로 나오는 배우가 아니라, 김 작가와 함께 드라마를 했으면서도 나오지 않는 배우와 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면 재밌을 것이다).

 

복수와 함께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실패기였다. 강은정 작가와 함께 썼던 <태양의 남쪽>으로 김 작가는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5년 전 여름의 일이다. <파리의 연인> 기획안이 나왔을 때 거의 모든 드라마 PD들이 그녀들을 외면했다. 그때 그녀를 거둔 PD가 신우철 PD였고, 이후 그녀는 신PD와 계속 작업을 함께 했다.

 

 

김 작가를 인터뷰하려고 했던 것은 한류의 중심에 드라마 작가가 있다고 보고, 그 중 ‘미래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성 작가 4명을 선정해 ‘한류 4대 여왕’으로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4명의 작가로는 <겨울연가>(스토리텔러로 참여) <가을동화>의 오수연씨, <파리의 연인>의 김은숙씨, <대장금>의 김영현씨, <아일랜드>의 인정옥씨를 꼽았었다.

 

김은숙의 공로는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드라마’ 일색인 상황에서 ‘캔디렐라 드라마’라는 변종을 만들어낸 공로였다. 재벌 2세, 부모 세대의 불륜, 그로 인해 생긴 출생의 비밀과 이복형제 혹은 이복자매 간의 사랑다툼, 이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이런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에 ‘캔디’를 효과적으로 주입했다.

 

‘캔디렐라’는 캔디와 신데렐라의 합성어다. 이 말은 드라마에서 캔디처럼 서민적인 주인공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서 손으로 별을 따는 ‘캔디렐라’ 드라마는 현실과 판타지의 환상 결합이다. 캔디 캐릭터를 통해 현실감을 더해 감정 이입을 쉽게 만들고,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의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을 ‘캔디렐라’에 ‘빙의’할 수 있도록 작가는 갖가지 장치를 드라마 속에 심어 놓는다.

 

<파리의 연인>을 통해 김 작가는 ‘캔디렐라’ 드라마의 형식미를 완성시켰다.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주인공의 사랑을 <파리의 연인>은 갖가지 설정과 에피소드를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갔다. 그녀는 드라마 속에서 ‘재벌 2세가 왜 가진 것 없는 비정규직 여성을 사랑하느냐’는 시청자의 의문을 여러 가지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풀어주었다.

 

이런 ‘캔디렐라’ 계보를 잇는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새롭다고 칭찬했지만, 이 드라마의 탄생 과정은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윤철 PD는 드라마 기획단계에서 50편(인지 1백편인지) 정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패턴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패턴을 드라마에 그대로 대입시켰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현대여성의 에고인 캔디(김삼순)와 슈퍼에고인 신데렐라(정려원 역)의 투쟁기였다.

 

<온에어>로 김은숙 작가는 새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전문직 드라마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직업 자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엮으면서 주인공들의 멜로선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실험적인 작가가 인기 있는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반면 인기 작가는 실험을 해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인기 작가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온에어>에는 인기 배우들이 카메오로 많이 등장했다. 그들은 대부분 김은숙 작가를 보고 출연했을 것이다. 작가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은 우리 대중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스타 작가’의 시대를 연 김 작가가 좀더 많은 실험을 시도하고, 또 성공시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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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 : 공공의 적1-1>을 백배로 즐기는 방법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은 재미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그런 영화다. 이동진이 ‘KO 한 방 대신 부지런한 잽 백 번’이라고 표현했는데, 참 ‘적확한’ 표현이다. 잽이 백 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KO 한 방을 기대한 사람은 좀 실망할 것이고, 잽 백번을 기대한 사람은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전형적인 강우석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은 좀 싱겁다고 생각할 것이고, 전형적인 장진(각본을 썼다)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은 인간적인 악역, 이원술(정재영 분)에 집중해서 본다면 재밌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릿속을 맴돈 것은 제목이었다. ‘왜 <공공의 적 3>이 아니라 <공공의 적 1-1>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기 전 살짝 들었었는데, 보고 난 뒤 말끔하게 풀렸다. 정말 적절한 제목이었다. <공공의 적 3>이 <공공의 적 1-1>로 바뀐 것은 단지 주인공의 직업이 검사(<공공의 적2>)에서 형사로 돌아온 것 의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를 따지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2>를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공의 적2>는 명백하게 실패작이었다. 국민들이 ‘검사스럽다’는 말을 만들 정도로 곱게 바라보지 않던 검사를, 김용철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삼성 떡값을 양아치 삥 뜯듯 챙기시던 ‘떡검’을 미화해 놨으니, 관객들이 예쁘게 봐줄 리가 만무했다.


우연히 <공공의 적 2>를 서초동 검찰청 인근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검찰청에서 단체 관람을 온 듯했다. 노타이 정장의 중년 남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는데, 적중했다. 그들은 웃어야 할 곳에서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곳에서 웃었다. 영화보다 그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밌었다.


<공공의 적 2>는 아주 촌스럽게 말하면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영화였다. 검찰 직원의 정훈교육 영화로 손색이 없었다. 이전 영화에서 검찰을 비꼰 것에 대한 면죄부를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 2>를 온전히 검찰에 봉헌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적 1-1>에서 강철중이 다시 형사로 돌아온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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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공공의 적 1-1>을 백배로 즐기는 방법을 짚어보겠다. 간단하다. 악역 이원술을 이명박 대통령에 비추어 보면 된다. <공공의 적>시리즈는 우리 사회 악의 구조에 대한 알레고리였다. 그 알레고리의 정점에 이 대통령을 얹어 놓고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한 가지 분명히 하자, 이원술을 이 대통령에게 비유한 것은 그가 조폭 두목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많은 전과와 어두운 경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청년 사업가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성공한 그를 세상은 깡패라 부르지 않고 회장이라고 부른다.


알레고리의 피라미드를 살펴보자. 이원술 옆에는 그를 보좌하는 변호사가 있다. 법을 이용해 그가 편법과 탈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법을 오용하는 변호사는 조중동에 비추어보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법을 오용하는 변호사와, 여론을 호도하는 조중동의 모습은 완전 데칼코마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행동대장 박문수는 어청수 경찰청장이다. 오직 오야붕 한 명만 바라보고 갖가지 궂은일을 도맡는 모습이 꼭 닮았다. 특히 박문수가 어청장을 닮은 점은 살인 사건을 직접 저지르고 그 죄를 철부지 고등학생한테 덮어씌우는 대목이다. 여대생 폭행사건을 의경 징계만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어청장과 호형호제 할만하다.


알레고리의 하이라이트는 이원술의 거성그룹에 인턴사원으로 스카웃되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고삐리’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이원술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인스탄트 킬러’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것이 ‘출세의 비법’인 양 서로 하겠다고 다툰다. 이들의 모습에는 서울광장과 MBC KBS 앞에서 촛불집회 시민을 윽박지른 HID와 고엽제전우회의 모습이 정확히 겹친다.


<공공의 적> 1-1의 마지막 장면은 강철중과 이원술이 사생결단의 ‘맞장’을 뜨는 장면이다. 아주 질퍽하게 싸운다. 그 싸움을 보는 순간 50여일간 지속된 촛불집회와 정부의 추가협상이 떠올랐다.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 “정부도 촛불도 할만큼 했다”라고.


그러나 싸움은 승부를 내야 한다. 칼침 맞은 배를 움켜잡고 강철중이 기어이 이원술을 녹다운 시키듯, 국민도 물대포 맞은 머리를 움켜잡고 기어이 이 대통령을 녹다운 시키려 하고 있다. KO 펀치 한 방이 아니라 잽 백 번으로. 국민에게 맞기 싫으면, 대통령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본다면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을 재밌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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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에 숨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름 모를 촛불소녀가 말했다.
“이 한몸 다 ‘받’쳐 한 대 ‘쥐박’고 싶‘읍’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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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바다는 기사의 바다였다. <시사IN>은 청계광장 입구에 ‘거리편집국’을 차려놓고 6월2일부터 11일까지 9박10일 동안 촛불집회 현장을 밀착취재했다. 그리고 137개 기사를 <시사IN> 블로그(blog.sisain.co.kr)에 쏟아냈다.

거리편집국을 차려놓자 여기저기서 제보가 밀려들었다. 정태인 진보신당 서민지킴이운동본부장(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추부길 비서관(청와대 홍보기획)이 서울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전화했고, 정범구 전 의원은 경찰이 광화문에 쌓은 컨테이너 장벽에 누군가 ‘명박산성’이라는 현수막을 붙여놓았다며 헐레벌떡 뛰어와 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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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영양가’ 있는 제보가 많이 들어왔다. 특수임무수행자회(HID)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난 직후 위령제 장소를 급히 시청광장으로 바꿨다고 제보한 시민도 있었고,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현장에 와서 자유발언을 할 예정이라고 귀띔해주는 경찰도 있었다. 

청와대 근처에서 근무하는 한 환경미화원의 제보는 매우 절실했다. 전경들이 일회용 도시락을 먹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공권력을 행사한다는 사람들이 먼저 법을 지켜야 할 것 아닌가. 조만간 경찰청장을 상대로 벌금형에 해당하는 ‘무단투기’ 신고를 할 예정이다”라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서 전경들에게 폭행당한 뒤 실종됐다는 소문에 휩싸였던 ‘너클 아저씨’ 김태성씨와 전경버스 위에서 전경들이 바지를 벗기는 바람에 전 국민에게 엉덩이를 노출한 ‘국민 엉덩이’ 박태훈씨는 거리편집국에 와서 밝고 해맑은 얼굴로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시사IN>과 거리인터뷰를 했던 진중권 겸임교수와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 후에, 각각 진보신당 칼라TV와 KBS <취재파일 4321>의 리포터로 나서 취재 경쟁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기자들의 취재만 받던 사람들이 현장을 직접 취재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거리편집국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들과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독자들이 거리편집국을 찾아 기자들을 응원해 주었다. 대부분 빈손으로 오지 않고 먹을거리를 사왔는데, 너무 많이 사오시는 바람에 '사오시지 말아주십사' 공지를 냈다. 그랬더니 '사오지 않고 싸왔어요'라며 주먹밥을 내미시는 분이 있었다. 정말 못말리는 독자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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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유머감각도 발전했다.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막는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명명한 것은 특히 탁월했다. ‘명박사전’은 다국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도 게재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명박산성(明博山城)은 “광종(狂宗)(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 이명박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內城)”이다.

환경단체는 ‘쇠고기 협상 백지화’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 따위 문구를 커다란 흰색 운동화에 새겨 들고 다녔다. ‘백지화’를 흰색 운동화로 형상화한 것이다. 서울 명동의 향린교회 교인들은 ‘명박지옥 탄핵천국’이라는 팻말을 들고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기발한 문구들 사이에서 최고의 문구는 어느 이름 모를 ‘촛불소녀’가 들고 있던 손팻말이었다. “이 한몸 다 ‘받’쳐 한 대 ‘쥐박’고 싶‘읍’니다”라고 썼는데 이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다”라고 잘못 적었던 걸 비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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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has taught us that love does not consist in gazing at each other, but in looking outward together in the same di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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