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합니다"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안요일씨의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다.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즉석에서 '8.15 평화행동단'에 자원했던 안씨는, 파란색 색소를 잔뜩 뒤집어쓰고 여경들에 빙 둘러싸인 채로 소공로 한가운데 연좌 중이었다.


도로는 모두 경찰이 점령한 상황. 시민을 하도 잡아대느라 닭장차가 모자라지 않았다면, 안씨와 동료 십여명도 15분 전에 연행됐을 거였다. '한 짐'을 비워 낸 호송차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는 무전이 내 귀에도 안씨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아마도 그 목소리를 기사로 쓸 일도 없을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곧 연행되실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담담합니다." 그는 그렇게 거짓말로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광주항쟁때, 그때 제가 광주에 있었습니다. 이건 그때 광주에 버금가는 탄압이에요." 다시 거짓말이다. 8월15일이 골때리긴 했지만 군대도 실탄도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을 40대 남성이 사복체포조와 색소물대포가 난무하는 거리를 보며 느낀 충격은, 막 박정희 시대를 지나온 1980년의 고등학생이 계엄군을 보며 받은 충격 이상일지도 모른다.


안씨는 데모꾼도 좌빨도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8.15 평화행동단'을 모집한단 소리에 즉석에서 자원한 시민이다.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평화적인 연좌농성을 벌이겠다고 모인 이들인데, 한무리의 사복경찰이 이들을 달랑 들고 가는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성추행 시비를 차단하겠답시고 여자 시위자들은 우선 남겨놓았는데, 꽁지머리를 한 안씨는 아마 여성 시위대로 오해를 받았지 싶다.


"이민 신청을 해 놓았어요. 나는 이민가면 사실 그만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이 대책없는 양반아, 떠날수 있으면 얼른 떠나실 것이지 이 무슨.


몇월쯤 이민가실 생각이신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 단지 기사로 썼을 때 팩트가 비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 그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경찰 두 명이 안씨의 팔을 잡아끌었다. "집시법 위반으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기자 들으라고 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사복경찰들이 외쳤다. 호송차가 온 모양이다.


따라가며 재차 물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몇달 후면 자신이 살지도 않을 나라 걱정을 하다 연행되는 사람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으로는, 좀 너무한다 싶었다. 8시45분. 경찰의 '진압작전' 개시 45분 후, 인터뷰 시작 3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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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인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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